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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지는 것들

봄에 장미 2020. 10. 4. 23:44


⠀나중에는 정작 내가 정말 사랑했던 것들을 사랑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무섭다.

⠀나는 기억력이 그 이상으로 좋다. 꽤 좋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종종 머릿속에 남고, 불현듯 스치기도 하고 의미 없는 날짜가 내 기억력에 의해 의미 있게 되어 의식하게 됐던 날들도 있었다. 잦았고, 또 자주 그랬다.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취향, 습관, 버릇, 말투까지. 그리고 심지어 사소한 일들과 그 주변 사람들을 기억하게 돼서 어쩌면 내 메모장과 머릿속 한구석에는 그 사람들의 정보로 나열되어 있다. 실은 이게 내가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소신이고 방식이라 생각해서 메모를 자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잊고 싶은 기억과 날짜가 있어도 이 기억력은 자기 멋대로 지독해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다행히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지워지지 않아서 좋지만, 아무튼 속이 뭉개지는 일은 없었고.

⠀하루는 먹먹해지는 날짜에 무거운 기분과 기복이었다. 나도 이렇게 휩쓸릴 때가 있나 싶어서 하루를 훌렁훌렁 넘겼는데 다 지나기 십 분 전에 깨달았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던 날이었는데. 그 날짜였는데.

⠀거울을 보다가 자각하자마자 울었다. 나는 감정을 다 쏟아서 울면 코부터 빨개지는데 코가 빨개지지 않은 채로 눈물만 흘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만 그렇게 났다. 계속 눈물이 났고 동시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 관련된 날짜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잊혀져서 뒤늦게 알았는데, 나중에는 내가 정말 사랑하고 있는, 더욱 사랑했던. 그리고 잊고 싶지 않은 사람에 관한 무언가를 자연히 잊지 않을까. 잊으려나. 어쩌면 그때는 자각하지도 못하고 알아차리지도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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