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하기 본문

“사랑에 빠질 때는 하늘이 핑크빛, 사랑이 멀어질 때는 하늘이 회색빛,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때는 하늘이 무지갯빛으로 보일 거예요.”
교양 시간에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새로운 연인과 하루를 시작하며 같이 맞이하면 가능한 일이려나 싶은 의문과 호기심만 가득 찼지만, 아니었다. 사랑에는 많은 종류가 있고 다양한 색이 있는 것처럼 그중에서 나에게 먼저 다가와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짝사랑이었다.
그 사람은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도 주변이 정전된 것처럼, 마치 깜깜한 시골 밤에 유일하게 반짝거리는 반딧불이처럼. 이걸 사랑이라 하고, 나 혼자만의 사랑이니 짝사랑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무심하지만 그 무심함 속에 정이 많고 따뜻했다.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묻는 질문에만 착실하게 대답을 할 뿐,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는 걸 본 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기까지 머뭇거렸던 건지도 모른다. 인사로 가볍게 나아갈 수 있어도, 당장 손을 내밀어 덥석 잡아 버리는 것보다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걸 깨달을 때쯤, 내 옷자락을 잡아 줄 사람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끝없는 구애로 지나가며 스쳐도 나와 같은 감정으로 마주한 눈길은 없었지만, 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날에는 옆에 와 기웃거리기도 한 그 사람은 정도 많고 따뜻한 사람이다. 우연히 손이 스쳤을 때 꽤 차가워서 내 손에 열기가 더 날 기세였는데, 그만큼 속마음에 온기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주변을 배회하고 서성이는, 잔잔한 짝사랑이 좋았다. 서로에게 짊어지는 무게감도 없으며 나에게는 용기조차 없는, 선이 흐린 이 짝사랑이 좋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세상은 매일이 맑은 하늘로 화창할 수 없어서 핑크빛은 회색빛이 되었고, 그 회색빛은 점차 평범한 하늘이 되어 곧 무지갯빛의 하늘을 기다리게 된다. 이 열대야의 열기가 식자 나의 짝사랑도 숨이 죽어 이제 그 사람은 깜깜한 밤에 반딧불이가 될 수 없었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도 나에게는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 똑같을 뿐이다. 이제 내 시야에 그 사람의 색은 띄지 않게 되었다.
⠀지금 되뇌어 보니 좋아한다는 감정을 품은 게 일방적이었지만,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오는 벅참으로 세상이 무지갯빛에서 핑크빛으로 펼쳐지는 게 좋았고, 내 속마음에 씨앗이 꽃으로 만개하여 이 무더운 여름날 열대야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게 좋았던 게 아닐까. 이 꽃이 열기에도 지지 않고 척애라는 꽃말의 일념 하나로 버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좋아했다.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끝자락에는 짝사랑의 감정을 사랑한 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우정에서 파생된 사랑을, 사랑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너를 짝사랑했다.
⠀덥다. 다시금 열기가 올라서 나는 너를 사랑함과 함께 더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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